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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인사이트 시리즈

대한민국 좌우갈등 (하): 진보와 보수, 끝나지 않은 전쟁

by routine-note 2025.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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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좌우 갈등 (하): 끝나지 않은 전쟁

대한민국 이념 갈등 (하)
끝나지 않은 전쟁

상편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정국의 혼란까지, 대한민국 이념 갈등의 씨앗이 뿌려지고 폭력적으로 번지는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하편에서는 한국전쟁이라는 민족 최대의 비극을 시작으로, 이념 갈등이 어떻게 권력 유지의 도구로 사용되고 우리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으며, 왜 그 상처가 오늘날까지 아물지 않고 있는지, 그리고 화해를 위한 길은 무엇인지 모색합니다.

제3부: 돌아올 수 없는 강 (1950-1987)

3-1. 한국전쟁, '반공'의 내면화

만약 신탁통치 논쟁이 좌우 대립의 '틀'을 만들고, 4·3과 여순이 그 틀을 '피'로 채웠다면,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그 틀과 피를 대한민국 모든 국민의 뼛속 깊이 새겨 넣은 결정적 사건이었다.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3년간의 전쟁은 민족 전체에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겼고, '반공'을 단순한 정치 이념이 아닌, 국가의 생존과 직결된 절대선이자 종교적 신념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전쟁의 참상은 상상을 초월했다. 수백만 명의 인명 피해, 전 국토의 파괴, 천만 이산가족의 발생 등은 북한 공산 정권에 대한 극도의 적개심과 공포를 낳았다. 전쟁 중 인민군 점령하에서 벌어진 인민재판과 학살, 그리고 후퇴하는 국군과 경찰에 의해 자행된 **보도연맹 학살** 등 좌우 양측에 의한 끔찍한 민간인 학살은 이념 대립이 인간성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똑똑히 보여주었다.

이러한 집단적 트라우마는 '좌익' 또는 '사회주의'라는 단어를 정치적 스펙트럼의 일부가 아닌, '빨갱이'라는 비인간적인 적으로 규정하는 언어로 완전히 대체시켰다. '빨갱이'는 토론이나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박멸해야 할 악마로 인식되었고, 이러한 인식은 이승만 정권에 의해 체계적으로 이용되고 강화되었다. 국가보안법은 더욱 강력한 통치 도구가 되었고, 한번 '빨갱이'로 낙인찍히면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척까지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연좌제**가 공공연히 자행되었다.

3-2. 독재의 그늘, '반공'이라는 이름의 폭력

한국전쟁을 거치며 절대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은 '반공'은 이후 30여 년간 이어진 군사독재 정권의 가장 강력한 통치 무기가 되었다.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권위주의 정권은 민주적 정통성이 부재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모든 민주화 요구를 억압하기 위해 '반공'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다.

특히 1972년 10월, 종신 집권을 위해 단행된 **'10월 유신'**은 반공 이데올로기 무기화의 절정을 보여준다. 유신 체제 하에서 모든 민주화 요구와 비판은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이적 행위'로 간주되었고, 중앙정보부는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과 같은 '용공(容共) 조작 사건'을 터뜨려 공안 정국을 조성했다. 이는 민주화 운동을 '공산주의자의 국가 전복 시도'로 둔갑시켜 국민적 공포를 조장하고, 정권에 대한 저항 의지를 꺾으려는 독재 권력의 잔혹성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법 살인'**이었다.

3-3. 5·18 광주, 이념과 지역주의의 비극적 결합

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의 집권 시나리오에 맞서 광주 시민들이 벌인 민주화 요구 시위는 한국 현대사에서 이념 갈등이 지역 갈등과 결합하여 더욱 치명적인 형태로 발전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신군부는 계엄군을 투입해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이 끔찍한 만행을 정당화하기 위해 **'북한 개입설'**을 동원했다. 그들은 광주 항쟁을 민주화를 위한 시민의 저항이 아니라, "불순분자와 폭도들이 북한의 사주를 받아 일으킨 내란"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왜곡된 정보를 언론을 통해 전국에 유포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그에 대한 신군부의 탄압 및 왜곡은 한국 사회의 갈등 구조에 새로운 차원을 더했다. '반공' 이데올로기는 자국민 학살마저 정당화하는 논리가 되었고, 이념 갈등은 특정 지역에 대한 적대감, 즉 **지역주의**와 깊이 결합되었다. '광주=폭도=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히면서, '영남 패권주의' 대 '호남 소외론'이라는 지역감정은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고질적인 정치 병폐, 즉 **'망국적 지역주의'**의 뿌리가 되었다.

제4부: 민주화 이후의 역설 (1987-현재)

4-1. 끝나지 않은 전쟁, 현재 진행형 피해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가져왔지만, 역설적으로 과거의 망령들이 합법적인 정치 공간에서 다시 싸울 수 있는 새로운 장을 열어주었다. 독재 시절의 억압 논리와 민주화 운동 시절의 저항 논리가 정당 정치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으면서, 한국 정치는 미래 비전 경쟁이 아닌 과거사 재판정으로 변질되었다.

그 피해는 오늘날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난다. 정치 양극화와 정책 실종, 지역주의의 고착화, 언론의 정파성과 신뢰 추락, 그리고 '팬덤 정치'와 혐오의 문화 확산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는 강성 지지층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결집하여, 자신과 다른 모든 목소리를 적으로 규정하고 집단 공격하는 **팬덤 정치**는 이성적 토론을 마비시키고 정치 문화를 극단적으로 황폐화시키고 있다.

4-2. 역사 전쟁, 과거를 둘러싼 현재의 투쟁

한국 사회에서 좌우 갈등이 좀처럼 봉합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과거사에 대한 합의된 기억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에도 과거사는 청산의 대상이 아니라, 현재의 정치적 투쟁을 위한 도구로 끊임없이 소환되고 있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 독립운동사 해석, 5·18 광주민주화운동 왜곡 등 **'역사 전쟁'**이 계속되는 한, 서로를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기 어려우며, 미래를 향한 공동의 비전을 세우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결론: 화해를 향한 길

대한민국의 이념 갈등은 수십 년에 걸쳐 여러 겹의 역사적 상처가 덧대어져 형성된 복합 골절과 같다. 단 하나의 처방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과거를 직시할 용기, 상대를 적으로 보지 않고 동료 시민으로 인정하는 관용, 그리고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공동의 의지가 모일 때, 비로소 우리는 이 길고 긴 전쟁을 끝내고 진정한 화해와 통합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 길은 멀고 험난하겠지만, 미래 세대를 위해 현세대가 포기해서는 안 될 역사적 책무이다.

◀ 상편 다시보기 | 시리즈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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